“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 명작”을 다녀와서

동원대학교 항공서비스과 교수
유용재
장욱진: 공기놀이
(사진 © 2021 y.kim )

어린 시절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으며 매번 새로운 그림을 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극장의 대형 간판이었다. 영화가 바뀌면 그림도 바뀐다. 그림 또한 매우 사실적이다. 그래서 쉽게 이해되고 강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사실주의 그림… 중학생의 어린 나이에도 그림에 대한 예술적 가치보다는 매번 바뀌는 새로움에 극장 앞을 지날 때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곤 하였다. 70년대 전까지 우리나라에는 이렇다 할 미술관조차 없었다. 예술보다는 내일 한 끼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네 고달픈 삶 속에 그림감상은 어쩌면 사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즈음 1969년 10월 20일, 국립 현대미술관이 경복궁에서 개관한다. 이후 1973년 덕수궁 석조전으로 청사를 이전 한다. 7080 세대들에게 현대미술관에 대한 기억은 아마도 이때부터 일 것이다. 현재는 과천, 덕수궁, 서울, 청주의 4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네 팍팍한 삶 한가운데서도 우리 작가들은, 우리의 삶을 저마다의 예술혼을 담아 세상을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술시간에 박수근, 이중섭 이응노 등 일부 한국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서양의 미술사조를 이어가는 작가들의 그림을 더 익숙하게 접하곤 하였다. 밀레, 고흐, 고갱, 마티스, 모네, 피카소 등등 각 미술사조를 대표하는 작가를 외우고 그들의 그림을 기억하곤 하였다.

(사진 © 2021 y.kim )
권진규: 코메디

미술작품 앞에 진지한 마음으로 감상이란 걸 할 수 있었던 것은 성인이 되어 해외 여행중에 유명 미술관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림을 실제 보았을 때인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회사가 항공사라서 남들보다 먼저 그리고 많이 해외를 오갈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유럽의 어느 미술관에서 교과서 속의 그림을 실제 보았을 때의 감흥은 참으로 가슴 설레고 감동으로 벅차오르던 즐거움의 시간이었다. 미술에 대한 안목이나 지식이 없어도 교과서 속 그림을 실제 볼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마냥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그러한 즐거움, 교과서 속 명화를 볼 수 있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며칠 전 있었다. 바로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 미술 명작’ 전이다. 한국의 대표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한곳에서 감상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 유럽의 미술관 방문 때의 감흥이 또다시 밀려왔다. 참으로 기대되고 기쁜 시간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미를 현대화풍으로 표현하는 재능이 뛰어났던 김환기 작가, 너무나도 유명한,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이중섭의 황소, 과감한 색채를 활용하여 산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그린 유영국 작가, 서예가로도 활동한 경력 때문인지 문자 추상으로 유명한 이응노 작가, 길가의 아이들이나 여인들, 우리네 동네 풍경을 소박하게 담아낸 박수근 작가, 매우 독특한 화품의 천경자, 시대를 앞서간 나혜석 작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정서를 그림에 투영한 장욱진 작가, 한국 근대 조각의 거장 권진규 작가 등등등. 참으로 벅찬 감동을 감추기 힘든 환희의 시간이었다. 우리나라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유명작가의 작품들을 보면서 코로나로 인해 메말랐던 예술적 감성에 대한 갈증을 단번에 풀 수 있는 값지고 귀한 시간이었다. 이번에 관람한 작품들은 기증된 작품 중 아주 일부분이라 한다. 고인의 미술작품에 대한 안목과 수집, 그 대단한 작품들을 기증한 유족들의 큰 결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기쁨을 선사하였다. 앞으로 기념관이 건립되면 전 세계인들이 그러한 명화를 함께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기쁘고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개인의 노력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좋은 그림을 한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건희 컬렉션에서 현대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면 과거 전통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미술관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다. 1938년 서울 성북동에 자리 잡은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의 전신이다. 이후 1971년 간송미술관이란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이 설립한 미술관으로 우리나라 고미술 작품의 보고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간송은 일제강점기에 잃어버릴 수 있는 우리 문화재, 고미술작품들을 수집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옛 선인들의 명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였다. 국보 제68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일본인 수장가로부터 당시 기와집 20채에 해당하는 2만원에 구입한 일화나, 민족말살정책이 한창인 1940년대 ‘훈민정음’을 먼저 발견하고 수집한 일화에서 그의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을 엿 볼 수 있다. 간송미술관은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작품부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작품을 비롯하여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와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미술 작품을 품고 있다. 현대 미술작품의 이건희 컬렉션이 있다면 고미술작품의 전형필 소장품이 있는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행운과 같은 일인 것 같다. 그러나 재작년 간송미술관측은 상속세 부담과 재정난으로 보유 불상을 경매에 내놓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미술작품을 감상함에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와 관련 지식을 갖고 있다면 보다 더 많은 것이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미술품을 감상하는데 꼭 어려운 미술사조와 화풍, 작가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그저 작품을 보았을 때 다가오는 느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미술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통해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처음에는 미술교과서에서 보았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출발하였으나 작품을 하나, 하나를 바라보면서 느껴지는 감동과 감흥이 주는 행복은 특별전이 가져다 준 선물과도 같았다. 이것이 바로 기증 작품들이 가진 가치일 것이다. 금전으로는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기쁨과 감동인 것이다. 故人이 된 두 분의 노력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 결실을 향유할 수 있다. 지난날 극장 간판에서 느꼈던 감흥과 즐거움 또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소한 재미와 즐거움을 주었듯이, 순수예술 작품이라고 해서 보다 가치 있고, 상업적 그림이라고 해서 보잘 것 없는 것은 아니다. 모두 다 우리들 삶 속에 작은 행복과 기쁨을 안겨다 주는 보물들이다. 때로는 어릴 적 추억과 감성이 깃들여진 극장간판이 생각나곤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극장 간판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온 세상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고통 받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금전적 손실과 비정상적 일상에 고통 받으며 ‘코로나 블루’라는 심리적 병을 앓고 있기도 한다. 그럼에도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함에 있어 옛 예술가들의 좋은 작품을 보면서 그 시름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 보는 것도 오늘을 견뎌내는 하나의 방법일성 싶다.

첨단 기술로 세계에 우뚝 서서 우리의 자긍심을 높여주더니, 이제는 우리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작품들을 선물하고 가신 故 이건희 회장에게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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